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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내 첫 컴퓨터였던 애플 2+(Apple II+) 이야기
    IT History 2017. 6. 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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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자그니님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옛날 PC 이야기를 좀 나눴다. 이날 팟캐스트의 주제가 아재토크였는데 말 그대로 아재들의 이야기, 어쩌면 꼰대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정말 먼 과거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름아닌 애플 2+(Apple II+) 이야기며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 내 경우에는 1984년부터 1989년까지의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이 2017년이니 33~4년전 이야기고 그래서 아재토크의 주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세한 방송 내용은 자그니님의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해당 방송을 들어보면 될 듯 싶다. 최근에 네이버 메인에도 올라간거 같은데(뭐 자그니님 얘기로는 내가 좋은 게스트였다고 하는데 난 진행자인 자그니님이 잘 이끌어줘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찌되었던 내용을 들어보면 요즘 세대는 생각하지 못했던 골때린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 포스트는 내가 한 내용을 그냥 다시 한번 정리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방송과는 좀 다를 수 있다. 내용 자체는 동일하겠지만 풀이 방식은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애플 컴퓨터 전체에 대한 추억은 예전에 썼던 포스팅을 봐도 어느정도 참고할만 할 듯 싶다.


    제주도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있는 애플 2의 모습


    일단 애플 2+는 어떤 컴퓨터일까? 애플이라는 단어를 봐서 알 수 있듯 스티브 잡스의, 그리고 지금의 팀 쿡의 애플이 맞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아이팟 등을 생산하는 그 애플이 맞다. 그 애플이 기업을 시작할 시기, 즉 초창기에 만든 컴퓨터가 바로 애플 컴퓨터 시리즈로 1976년에 애플 1이 나왔고 1년 뒤인 1977년에 애플 2가 나왔다. 오늘 얘기할 애플 2+는 애플 2의 후속기종으로 1979년에 나온 모델로 지금의 애플이 있기까지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컴퓨터라고 보면 된다. 내 기억에 애플 시리즈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로 알고 있다. 물론 그 뒤에 애플 2e나 애플 2gs, 애플 3 등의 다른 애플 시리즈들이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애플 시리즈만 따져봤을 때 애플 2+는 그 호환기종을 다 포함하여 가장 많이 팔린 PC라고 알고 있다.


    참고로 애플은 1976년도에 애플 1을 시작으로 애플 시리즈를 만들고 1984년도에 매킨토시를 시작으로 매킨토시 시리즈를 만든다. 애플 시리즈는 애플 3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애플 시리즈는 마지막 모델인 애플 3가 16비트 PC로 나와서 나름대로의 시대를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매킨토시 시리즈는 지금까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아이맥과 맥북, 맥북 프로, 맥 프로 등의 맥 시리즈들이 바로 매킨토시 시리즈의 현재의 모델들이다. 매킨토시를 줄여서 맥이라고 많이 불렸는데 그게 그대로 브랜드화 되어서 지금은 다 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보통 애플이라고 하면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애플워치 등의 모바일 단말기를 많이 생각하는데 원래 애플은 애플 시리즈와 매킨토시 시리즈 등 PC 기반 제조사다. 물론 지금은 그 주력이 모바일 단말기로 넘어간 상태지만 말이다.


    다시 애플 2+ 이야기로 돌아와서 애플 2+의 CPU는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저성능의 CPU로 MOS 테크놀로지에서 만든 MOS 6502를 사용했는데 이 녀석은 8비트 CPU다. 속도도 1MHz고 1 코어만 지원하는 CPU다. 최근에 보니 인텔이 Core i9을 발표했던데 4 코어, 8 코어를 넘어 32 코어까지 지원하는 CPU가 나오는 요즘과 비교하면 정말로 비교가 안되는 CPU라고 보면 된다. 뭐 1977년도 이야기다(참고로 애플 2와 애플 2+의 CPU는 동일한 MOS 6502를 쓴다). 40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는 것이 좀 어불성설이기는 하다.


    CPU만 그랬을까? 메모리 역시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48KB를 제공했다. 48MB가 아니고 48GB가 아닌 48KB다. 뭐 그래도 그 시대에는 48KB만으로도 어플리케이션이 잘 돌아갔다. 물론 나중에 16KB 확장 메모리 카드가 나와서 64KB로 메모리를 늘려서 쓸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 국내의 경우 애플 2+ 호환기종이 나올 때에는 아예 64KB로 확장해서 나오기도 했다. 어찌되었던 1980년대 초반에 애플 2+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은 48KB로도 나름 잘 사용했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


    넥센컴퓨터박물관에 있던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애플 2의 모습


    저장장치는 또 어떨까? 요즘의 경우 아직까지는 HDD(하드디스크)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기본으로 SSD를 쓰고 있는 추세다. 용량이 좀 큰 경우에는 HDD를, 작은 경우에는 SSD를 쓰고 2개를 함께 쓰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USB 메모리도 많이 쓰는데 요즘은 기본이 16GB를 제공한다. 좌우간 USB 메모리, HDD, SSD 등이 요즘 사용하고 있는 PC의 저장장치라고 한다면 애플 2+는 초창기에는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플로피디스켓을 사용했고 그 전에는 카세트 테잎을 사용했다. 내 경우에는 1984년도에 처음으로 애플 2+ 호환기종을 사용해봤는데 그 때에는 카세트 테잎을 저장장치로 사용했고 2년쯤 뒤에 5.25인치 플로피디스켓(FD)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FDD)를 사용했다.


    카세트 테잎의 경우 그 시절에는 120분짜리는 없었고 가장 긴 것이 90분, 보통이 30분과 60분짜리 테잎을 사용했으며 그래도 내 기억에 게임 하나는 테잎 하나로 어느정도는 커버가 가능했다고 기억을 한다. 문제는 읽고 쓰는데 시간이 무진장 걸렸던 기억이 있다. 게임 하나를 읽어들이는데 못해도 10분 이상은 소요하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있으니까 말이다. 플로피디스켓으로 넘어와도 비슷하기는 했다. 물론 카세트 테잎보다는 편했다. 카세트 테잎으로 데이터를 읽어 들이기 위해서는 맨 처음으로 테잎을 돌려두고 재생버튼을 눌러서 읽었고 녹음버튼을 눌러서 데이터를 저장했다. 그런데 플로피디스크는 디스크드라이브에 넣기만 하면 위치에 상관없이 읽고 쓰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편했다. 읽고 쓰는 속도도 카세트 테잎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랐고 말이지.


    애플 2에서 썼던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

    플로피디스크는 애플 2+의 경우에는 5.25인치를 사용했으며 용량은 잘 모르겠고 한면과 양면을 쓰는 디스크로만 나뉘었다는 기억만 있다. 1D, 1DD, 2D, 2DD, 2HD 등의 용량은 16비트 PC인 IBM PC 호환기종으로 넘어와서 사용했던 기억이 있고 애플 2+ 때에는 그냥 디스크고 동일한 용량에 한면만 쓰거나 양면을 다 쓸 수 있거나 하는 정도로만 기억을 한다. 그래서 1S, 1D, 2D는 기억이 나는데 DD는 기억이 없다. 3.5인치 플로피디스크에는 2DD, 2HD 등이 있었는데 애플 시리즈는 3.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좌우간 디스크 한면에 게임 하나는 충분히 들어갔고 좀 덩치가 큰 게임은 디스크 양면을 모두 사용해서 썼던 기억이 있다. 용량의 경우 애플의 기준과 DOS를 사용했던 IBM PC 호환기종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애매하다. 참고로 1D는 180KB, 2D는 180KB의 2배인 360KB를 쓸 수 있다(표준은 그랬다).


    애플 2의 디스플레이


    내가 사용했던 애플 2+ 호환기종을 기준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래픽카드는 어떨까? 모니터는? 애플 1은 처음부터 흑백으로 나왔고 애플 2 역시 흑백으로 나왔다가 나중에 애플 2+ 이후에는 컬러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경우에는 당연히 흑백 기종을 사용했다. 그리고 모니터는 흑백 모니터(BW 모니터)와 그린 모니터(Green 모니터)가 있었는데 웃기는 것이 둘 다 흑백인데 그린 모니터의 경우 흰색이 녹색으로 보인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그린 모니터가 나온 것은 녹색이 눈에 부담이 덜되니 그렇게 나온 듯 싶다. 그리고 전용 모니터 뿐만이 아니라 TV에도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TV가 컬러 TV라고 해도 애플 2+에 연결하면 흑백으로 나오기는 했지만서도. 모니터도 LCD, LED가 아닌 CRT 모니터로 이른바 배불뚝이 모니터고 내가 사용했던 모니터는 12인치였다. 지금의 아이패드 프로의 디스플레이와 비슷한 크기라고 보면 되는데 화면만 그렇고 덩치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컸다.


    해상도는 어떨까? 애플 2+는 지금의 윈도 OS와 같은 GUI(그래픽 UI)가 아닌 CUI(Command UI), TUI(Text UI)로 윈도에서 제공하는 명령 프롬프트와 비슷한 화면이 메인으로 보인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애플 2+는 가로 48자, 세로 40자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의 화면을 제공했다. 텍스트 모드에서는 그랬고 그래픽 모드에서는 280 x 192의 해상도를 제공했다. 나중에 80컬럼 카드를 이용해서 텍스트 모드에서 가로 80자, 세로 70여자로 늘려서 보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좌우간 화면이 지금처럼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고 정말 낮은 해상도를 제공했다고 보면 된다. 내 경우에는 80컬럼 카드는 사용해보지 못했다(T.T).


    OS는 어떨까? 애플 2+는 기본으로 애플 OS(Apple OS)라는 녀석을 사용했는데 이게 재밌는 것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윈도와는 많이 다르고 그 전에 사용했던 DOS와도 좀 많이 다른 색다른 녀석이었다. 애플 OS는 기본적으로 애플 베이직을 내장하고 있었다. 내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애플 베이직이 애플 2+에 기본으로 탑재되어 나왔으며(부팅을 하자마자 바로 애플 베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애플 베이직 인터페이스에 파일을 관리할 수 있는 명령어가 추가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파일 목록을 보고 싶은 경우 지금은 다 윈도를 쓰지만 그 전에 사용했던 DOS라는 녀석을 쓸 때에는 DIR이라는 명령을 치면 파일 목록이 표시가 된다. 리눅스라면 LS라는 명령을 치면 그렇게 나온다. 애플 OS도 CATALOG라는 명령을 치면 디스켓에 담겨있는 파일의 목록을 보여줬다. 그런데 DOS나 리눅스의 쉘은 명령이나 실행파일을 입력해야 실행이 되는데 애플 2+의 애플 OS는 애플 베이직이 함께 담겨있는 터라 쉘 상태에서 프로그래밍이 동시에 가능하다. 물론 리눅스의 경우 셀 스크립트를 직접 짤 수는 있지만 애플 베이직을 짜는 것하고는 좀 많이 틀리다. 여하튼 개발 툴과 OS가 함께 붙어있는 그런 모양이었다.

    애플용 조이스틱


    내가 갖고 있던 애플 2+에는 악세서리로 조이스틱이 있었다. 물론 앞에 언급했던 디스크 드라이브도 악세서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장장치와 악세서리는 좀 다른 개념으로 봐야하기에 여기서는 취급하지 않겠다. 어찌되었던 게임을 좀 더 손쉽게 하기 위한 악세서리로 조이스틱을 갖고 있었다. 조이스틱 덕분에 게임도 좀 더 재미나게 할 수 있었다. 밑에서 언급하겠지만 솔직히 애플 2+로는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게임은 오락실에서 더 많이 즐겼던 것 같다 ^^). 그 외에 악세서리로는 사운드를 강화시켜주는 머킹보드라는 것이 존재했다. 애플 컴퓨터 시리즈는 원래 사운드 부분이 약했다. 뭐 나중에 매킨토시가 나오고 애플 3 이후로는 좀 나아졌기는 했지만 애플 1이나 애플 2, 애플 2+와 애플 2e까지는 사운드 기능은 그닥 우수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사운드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머킹보드라는 녀석이 별도로 카드 형식으로 나왔는데 난 머킹보드는 구입해서 써보지는 못했다.


    인기 게임이었던 스파이 대 스파이


    게임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 경우에는 애플 2+로 게임을 그렇게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종종 즐기는 게임이 있었으니 지금도 기억나는 4개의 게임이 로드런너, 카라데카, 스파이 대 스파이, 그리고 캡틴굿나잇이라는 게임이다. 앞서 말한 3개의 게임은 정말 많이 즐겼고 캡틴굿나잇이라는 게임은 게임 실행이 워낙 어려웠고 시나리오도 어려워서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뇌리에 남았던 게임이다. 로드런너의 경우 카세트 테잎 시절부터 즐겼던 게임인데 게임 시작 시 암호를 물어봤는데 테잎 앞면에 아버지께서 암호를 써놓으셨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께서 숙제 다 하면 게임한번 해주게 하겠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공부를 다 한 다음에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게임에 대한 내용은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다 나오는 내용이니 따로 얘기는 안하겠다. 다만 카라데카는 그 시절 애플의 그래픽 성능 등을 고려했을 때 무척이나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을 보여줬으며 진보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카라데카 게임 제작사가 나중에 만든 게임이 페르시안의 왕자다. 스파이 대 스파이는 애플 2+로 가장 많이 즐겼던 게임인데 아케이드이면서도 전략 시뮬레이션같은 게임이기도 했다(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그런 류의 게임은 아니다). 


    내 애플 2+에 대한 기억은 1989년에 끝났다. 1989년도에 아버지께서 애플 2+를 팔고 IBM PC/XT를 구입해 주셔서 16비트 IBM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1990년에 한국의 교육용 PC를 8비트가 아닌 16비트로 선정함으로 인해 1980년대 한국 PC 시장을 나름 이끌었던 애플 2 호환기종의 전성시대도 끝나게 된다(같은 시기에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MSX 호환기종들은 나중에 게임기로 조금 더 명맥을 유지하지만 애플 2 호환기종은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컨텐츠 재생용보다는 업무용, 교육용에 더 가까워서 바로 IBM PC 호환기종에 그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내 경우에는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어렸을 때 컴퓨터라는 것을 접했고(1980년대 중반에 접한 사람은 어떻게 보면 거의 대한민국 1세대 컴퓨터 세대에 가깝다) 그 영향으로 인해 지금까지 컴퓨터에 관련된 직업을 갖고 먹고 살고 있는데 이런 히스토리를 생각하면 애플 2+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을 생각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89년의 IBM PC/XT를 구입하고 포트란(FORTRAN), 코볼(COBOL), C언어를 배운 이후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C언어는 지금까지도 내 주력 프로그래밍 언어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좀 더 쓰고 싶은 얘기가 있기는 한데 글로 다 표현하기는 힘들고 팟캐스트로 하자니 말주변도 모자르고 해서 이 정도로 줄여볼까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번 포스팅에 못했던 이야기를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했던 애플 베이직과 애플 어셈블러 등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좀 많고 게임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데 막상 쓰려고 하니 정리가 안되어 이정도로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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